사극을 보다 보면 ‘망나니’라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커다란 칼에 술이나 물을 입으로 뿜은 다음 죄수의 목을 내리치지요. 참수형(斬首刑)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망나니들 입장에서도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술에 취해 참수형을 집행하다가 칼을 제대로 쓰지 못해 사형수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사형수의 가족들은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망나니들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단칼에 베어 고통을 없애달라는 부탁이지요.
의사들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고, 법률가들은 사회의 질병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칼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의사가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치료는커녕 환자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법률가는 어떨까요. 사람은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지향합니다. 불가피하게 분쟁에 말려들기라도 하면 하루빨리 벗어나길 희망합니다. 그래서 법률가는 보이지 않는 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도 작고 아물기도 빨리 아물겠지요.
검사로 근무하던 시절, 의도치 않게 법적 분쟁에 휘말린 분들을 보았습니다. 잘잘못을 떠나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분들도 많이 보았지요. 제가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변호합니다”라는 문구를 내건 이유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법적인 조언보다는 정신적인 케어(care)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아무리 어렵고 큰 수사도 두세 달을 넘기지 않았다. 문제 된 부분만 도려내고 깔끔하게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 사건은 결과에도 깨끗하게 승복했다. 수사 대상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일반적인 형사사건도 2, 3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에 만난 어느 원로 법조 기자의 말씀입니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법률도 복잡해졌습니다. 사실관계가 복잡해져 실체를 파악하기도 어려워졌지요. 암호화폐나 인공지능, 신약 개발과 같은 첨단 과학 분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때문에 공부를 해가면서 수사와 재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복잡한 분야가 아니더라도 몇 년씩 걸리는 사건이 부지기수입니다.
원인은 무엇일까요. 먼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1차 수사를 맡은 경찰과 기소를 맡은 검찰 사이에서 핑퐁을 하다 보면 훌쩍 시간이 지나가 버립니다. 여기에 경찰 내, 검찰 내 이송까지 더해지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기 마련이지요.
다음으로 의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종사자들의 사기가 떨어지다 보니 그저 사건을 쳐내기에 급급합니다. 사건의 내막과 진실을 들여다보는 대신 형식적인 처리에만 매몰되는 것이지요. 판결하기 싫은 사건이 배당되면 재판을 미루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실력의 문제입니다. 전문가에게 실력이란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변호사도 반드시 가슴에 새겨놓아야 할 단어이지요. 서초동에 있다 보면 잘못된 변호로 인해 사건을 망치고 나아가 의뢰인을 망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똑같이 칼로 상처를 내는 행위인데도 외과적 의료행위가 처벌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 아시는 것처럼 치료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치료와 사고는 한 끗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수술이나 치료는 오히려 환자의 건강을 망치게 하지요. 수사나 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건 사회이건 잘못된 곳, 아픈 곳을 고치려면 실력을 갖추고 신속히 처치를 해야 하지요. 그것이 사법이 해야 할 기본입니다.
2025. 1. 2.자 법률신문
분쟁 상황을 겪는 누구나
빨리 벗어나길 희망하지만
시스템 한계, 의지 부족,
실력 문제 등이 사회 치유 방해
복잡하지 않은 분야도
몇 년씩 걸리기가 허다
사회 잘못된 곳 치유 위해선
신속·정확한 처치가 법률가 몫
사극을 보다 보면 ‘망나니’라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커다란 칼에 술이나 물을 입으로 뿜은 다음 죄수의 목을 내리치지요. 참수형(斬首刑)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망나니들 입장에서도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술에 취해 참수형을 집행하다가 칼을 제대로 쓰지 못해 사형수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사형수의 가족들은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망나니들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단칼에 베어 고통을 없애달라는 부탁이지요.
의사들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고, 법률가들은 사회의 질병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칼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의사가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치료는커녕 환자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법률가는 어떨까요. 사람은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지향합니다. 불가피하게 분쟁에 말려들기라도 하면 하루빨리 벗어나길 희망합니다. 그래서 법률가는 보이지 않는 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도 작고 아물기도 빨리 아물겠지요.
검사로 근무하던 시절, 의도치 않게 법적 분쟁에 휘말린 분들을 보았습니다. 잘잘못을 떠나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분들도 많이 보았지요. 제가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변호합니다”라는 문구를 내건 이유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법적인 조언보다는 정신적인 케어(care)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아무리 어렵고 큰 수사도 두세 달을 넘기지 않았다. 문제 된 부분만 도려내고 깔끔하게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 사건은 결과에도 깨끗하게 승복했다. 수사 대상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일반적인 형사사건도 2, 3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에 만난 어느 원로 법조 기자의 말씀입니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법률도 복잡해졌습니다. 사실관계가 복잡해져 실체를 파악하기도 어려워졌지요. 암호화폐나 인공지능, 신약 개발과 같은 첨단 과학 분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때문에 공부를 해가면서 수사와 재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복잡한 분야가 아니더라도 몇 년씩 걸리는 사건이 부지기수입니다.
원인은 무엇일까요. 먼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1차 수사를 맡은 경찰과 기소를 맡은 검찰 사이에서 핑퐁을 하다 보면 훌쩍 시간이 지나가 버립니다. 여기에 경찰 내, 검찰 내 이송까지 더해지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기 마련이지요.
다음으로 의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종사자들의 사기가 떨어지다 보니 그저 사건을 쳐내기에 급급합니다. 사건의 내막과 진실을 들여다보는 대신 형식적인 처리에만 매몰되는 것이지요. 판결하기 싫은 사건이 배당되면 재판을 미루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실력의 문제입니다. 전문가에게 실력이란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변호사도 반드시 가슴에 새겨놓아야 할 단어이지요. 서초동에 있다 보면 잘못된 변호로 인해 사건을 망치고 나아가 의뢰인을 망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똑같이 칼로 상처를 내는 행위인데도 외과적 의료행위가 처벌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 아시는 것처럼 치료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치료와 사고는 한 끗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수술이나 치료는 오히려 환자의 건강을 망치게 하지요. 수사나 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건 사회이건 잘못된 곳, 아픈 곳을 고치려면 실력을 갖추고 신속히 처치를 해야 하지요. 그것이 사법이 해야 할 기본입니다.
2025. 1. 2.자 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