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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


7년 전 일본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1 년 동안 방문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기간 중 4주 가량은 일본 검사들과 같이 교육을 받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에 1주는 도쿄지검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당시 도쿄지검에는 4개의 부가 있었다. 형사부, 특수부, 공판부, 교통부가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교통사고만을 다루는 교통부가 독립되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도쿄지검에서 연수를 하는 동안 두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하나는 교통부에서 교통사고를 조사하면서 영상을 열심히 본다는 점이었다. 검사에게 무슨 영상이냐고 물어보니 자동차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를 통해 찍힌 영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상을 보면서 누가 신호위반을 했는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등을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많이 부러웠다. 왜냐하면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차량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교통사고 조사가 제일 어려운 수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교차로에서 사고라도 나면 서로 신호위반을 했느니, 꼬리물기를 했느니 하면서 말만으로 진실을 다퉈야 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지 2~3년 후 우리나라에도 블랙박스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CCTV도 많아져 누가 신호를 위반했는지 정도는 영상으로 판별이 가능해졌다.

나머지 하나는 특수부 연수 때 있던 일이다. 특수부장님과 점심을 하러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더 이상 특수수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연수생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수사의 전범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성과를 내고 높은 평가를 받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관련된 책이 여러 군데서 출판되기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부장님의 말씀 취지는 이런 것이었다. ‘특수부에 들어와 수사를 하려면 형사부에서 수사를 많이 해봐야 한다. 특수부에 배치되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없던 수사실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형사부는 기소 여부만을 판단할 뿐 자체적인 수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특수부에 데리고 와도 써먹을 수가 없다.’ 대충 이런 취지의 이야기였다. 누구든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전문적인 경험이 필요한데 경험이 없다 보니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부장님의 말씀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실제로 그 이후로 일본에서는 주목할 만한 특수수사 분야의 실적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실적에 몰린 특수부 검사가 증거를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을 수사하면서는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구속기간 연장을 두 번이나 기각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라는 책이 출간되는 굴욕도 겪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발족하면서 많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것을 기억한다. 정치적인 수사를 깔끔하게, 잡음 없이 해내리라는 것이 기대였다. 반면에 축적의 시간과 경험 없이 제대로 수사를 해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다. 출범한 지 4년에 가까워지는 동안 기대와 우려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워졌을까.

도쿄지검 특수부의 신화에서 배웠던 것처럼 이제는 실패에서도 배워야 한다. 수사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의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암 수술을 바로 하기는 어렵다. 큰 병원에서 수련도 필요하고, 많은 환자들에 대한 임상 경험도 필요한 법이다. 수사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형사사건의 경험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비로소 길러진다.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전제로 한 여러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 논의는 기관을 만들어만 놓으면 저절로 굴러간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그동안의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면 논의의 결과는, 제도 변화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교각살우의 고사가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2024. 10. 28.자 법률신문